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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해·공군 장관 첫 동반 출격한 미 육군협회 패널, 1조5천억 달러 국방예산에 사활…한국 조선·방산엔 새 기회의 문
피트 헤그세스 미국 전쟁부 장관이 육·해·공군 장관과 특수작전 담당 차관보를 한 무대에 세우고 ‘자율 전쟁’ 시대의 개막을 선언했다. 헤그세스 장관은 14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열린 미 육군협회 연례 회의의 자율전 패널에 참석했고, 이 자리에는 애덤 텔 육군장관 대행, 훙 카오 해군장관 대행, 트로이 민크 공군장관, 데릭 앤더슨 전쟁부 차관보가 함께했다.
헤그세스 장관은 2027년 10월 1일까지 4성 장군이 지휘하는 자율전쟁사령부를 세우고, 올해 자폭형 드론 수십만 대, 수년 안에 수백만 대를 배치하겠다고 밝혔다. 바이든 행정부를 향해서는 “극초음속에서도, 우주에서도, 드론에서도 그들은 낮잠을 잤다”고 직격했다.
무대는 처음부터 순탄치 않았다. 최소 5명의 시위대가 패널 도중 끼어들어 이란 전쟁과 트럼프 대통령이 제안한 1조5천억 달러 국방예산에 항의하는 듯한 고함을 질렀다. 헤그세스 장관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자유의 무기고’ 이야기로 돌아가자”며 답변을 이어 갔다. 패널 막바지에는 시위대의 구호를 정면으로 받아쳤다. “이란은 결코 핵무기를 갖지 못할 것입니다. 그것을 보장하는 게 대통령의 일이고, 제 일입니다.”
사회를 맡은 숀 파넬 국방부 수석대변인은 이날 행사의 의미를 이렇게 정리했다. 각 군 장관과 특수작전 담당 차관보가 같은 패널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보병 소대장으로 싸웠던 그는 “전투에서는 가장 빨리 적응하는 쪽이 전장을 장악한다”며 “실전 배치에 수십 년 걸리는 무기에 수십억 달러를 쏟는 사이, 적들은 몇 달 만에 신무기를 내놓았다”고 말했다. 짧은 개회사였지만, 이날 패널 전체를 꿰뚫는 문제의식이었다.
사업 이름부터 의미심장하다. ‘아쟁쿠르’는 1415년 백년전쟁 당시 영국군이 장궁을 앞세워 수적으로 우세한 프랑스군을 꺾은 전투로, 헤그세스 장관은 드론과 인공지능 같은 신기술이 전력 열세를 뒤집을 수 있다는 비유로 이 이름을 골랐다. 그는 지난달 발표 당시 활시위를 당기는 시늉까지 해 보였다. 600년 전 값싼 장궁이 중무장 기사단을 무너뜨렸듯, 이제는 수백 달러짜리 드론이 수억 달러짜리 무기 플랫폼을 위협하는 시대라는 메시지다.
자율전쟁사령부가 출범하면 미군의 통합전투사령부는 12개로 늘어난다. 새 사령부 창설은 흔한 일이 아니어서, 마지막 사례는 2019년 우주사령부였다. 국방부 메모에 따르면 이 사령부는 별도의 인력과 예산, 획득 권한을 갖고, 장교와 사병을 위한 자율전 전문 경력 트랙도 만든다. 지금은 오언 웨스트가 이끄는 ‘아쟁쿠르 프로젝트’가 사령부 창설의 길을 닦고 있다. 해병대 출신인 웨스트는 트럼프 1기에서 특수작전·저강도분쟁 담당 차관보를 지냈다.
미국은 드론을 발명한 나라다. 그런데 왜 정작 지상군에게 값싼 드론을 대량으로 쥐여 주지 못했을까. 웨스트의 질문에 헤그세스 장관은 거침없이 답했다. “세계 최대의 관료 조직인 이 건물에, 그 부속물이 되어 버린 기업들이 붙어 있는 셈입니다.” 거대 방산업체들이 누구보다 많은 변호사와 회계사, 로비스트를 거느리고 혁신 대신 기득권을 지켜 왔다는 진단이다. 그는 현재 5곳인 주계약업체를 임기 말까지 10~15곳으로 늘리지 못하면 실패라고 못 박았다.
숫자로 보면 변화의 폭이 선명하다. 헤그세스 장관은 취임 당시 전쟁부에 자폭형 드론 사업이 “단 하나도 없었다”고 했다. 그는 바이든 행정부의 자율 체계 투자가 최대 2억 달러 수준이었던 반면, 트럼프 행정부는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으로 12억 달러를 투입했고 이제 약 500억 달러를 바라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국방부는 2027 회계연도 예산안에서 국방자율전쟁단에 546억 달러를 요청했는데, 이는 올해 약 2억2,600만 달러에서 폭증한 액수다. 드론 1천 대에서 10만 대, 다시 100만 대로 가는 계단이다.
흥미로운 장면도 있었다. 웨스트는 “의회가 15년 동안 장성 수를 줄이라고 요구했고 장관은 실제로 감축에 나섰는데, 왜 장성이 여럿 필요한 4성 사령부를 새로 만드느냐”고 직설적으로 물었다. 헤그세스 장관은 “언론은 숙청이라 부르겠지만” 전투 부대(이빨)가 아닌 지원 조직(꼬리)에서 정밀하게 줄였다고 반박했다. 2차 대전 이후 3·4성 장군 수와 전장의 성공은 오히려 반비례했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계급은 줄이되, 정말 변화가 필요한 곳에는 확실히 몰아주겠다는 논리다. 트럼프 대통령이 우주군을 창설한 것과 같은 방식이라고 했다.
미군 역사에서 큰 조직 개편은 늘 내부 싸움을 동반했다. 1987년 특수작전사령부가 창설될 때 국방부 안에서는 거센 반발이 일었다. 로버트 게이츠 전 국방장관은 이라크전 당시 지뢰방호차량을 들여오기 위해 펜타곤 관료 조직과 씨름해야 했다.
헤그세스 장관은 “이번이 다른 점은 이 무대 위 모든 사람이 자율전에 전적으로 찬성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텔 육군장관 대행은 패널 전날 밤 육군 미래·자율체계사령부 창설을 발표하며 보조를 맞췄다.
패널의 또 다른 축은 돈이었다. 웨스트는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대륙간탄도미사일 중심으로 군을 재편할 때 국내총생산의 10~12%를 국방비로 썼고, 레이건 대통령은 6.2%를 썼지만 5년 전쯤에는 약 3%까지 떨어졌다고 짚었다. 트럼프 행정부가 요청한 2027 회계연도 국방예산 1조5천억 달러는 기본예산 1조1,500억 달러와 예산조정법안 3,500억 달러로 나뉘며, 통과되면 국방예산이 44% 늘어나는 역대 최고치가 된다.
헤그세스 장관은 중국이 “세계 역사상 가장 큰 군비 증강”을 벌이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지금 앞서 있는 쪽은 훨씬 더 앞서 나갈 것이고, 뒤처진 쪽은 훨씬 더 뒤처질 것입니다.”
보수 진영이 이번 예산을 ‘퍼주기’가 아닌 ‘구조 개혁’으로 보는 근거도 패널에서 나왔다. 웨스트는 스티브 파인버그 부장관이 2025년 정부효율부와 함께 감사로 확인 가능한 250억~300억 달러를 지원 부문에서 전투 부문으로 옮겼다고 소개했다.
헤그세스 장관은 파인버그 부장관을 “비밀 무기”라고 불렀다. 그가 방산업체들과 5~7년짜리 장기 계약을 맺으면서, 업계가 자체 자금으로 공장을 짓게 하고 정부는 패트리엇 요격미사일을 7년 뒤에도 오늘 가격으로 사게 됐다는 설명이다. 납세자 돈으로 공장을 지어 주고 하염없이 기다리던 시대는 끝났다는 얘기다.
각 군의 성과 발표는 속도전이었다. 텔 장관 대행이 소개한 ‘드론 마켓플레이스’는 이날 가장 큰 박수를 받은 아이디어였다. 장병들이 온라인 쇼핑몰에서 물건을 고르듯 드론을 직접 고르고, 별 3개, 별 5개 리뷰를 남긴다. 업체는 그 피드백을 실시간으로 받아 제품을 고친다.
텔 장관 대행은 이미 8억 달러어치의 구매가 이뤄졌다고 밝혔고, 이번 미 육군협회 서명식으로 참여국은 33개국으로 늘었다. 시험장 예약을 숙박 예약 사이트처럼 업계에 개방한 것, 로봇 전문 준사관 특기를 육군 전체로 확산시킨 것도 같은 맥락이다.
훙 카오 해군장관 대행은 실전 사례를 꺼냈다. 해군은 호르무즈 해협에서 무인정 ‘코르세어 II’로 아파치 헬기 조종사 두 명을 구출했고, 무인 수중 드론으로 기뢰를 제거했다. 10월 8일에는 시어도어 루스벨트 항모강습단이 처음으로 무인 수상함을 동반해 출항했다.
무인 함정이 왜 빨리 만들어지느냐는 질문에 카오 장관 대행의 답은 명쾌했다. 화장실도, 식당도, 장병 거주 공간도 필요 없기 때문이다. 사람을 태우지 않는 배는 마치 짐칸만 남긴 트럭처럼 설계가 단순해진다.
트로이 민크 공군장관은 “공군은 전투기 조종사 문화가 지배한다”는 지적을 정면으로 인정하면서도 변화를 자신했다. 무인 협동전투기는 첫 비행 1년 만에 네바다주 크리치 공군기지의 실험 작전 부대에 통합됐다.
이달 5일에는 국방혁신단과 함께 자율 폭격기 계약을 체결했고, 2028년 작전용 시제기, 2029년 대량 생산이 목표다. 그는 자율 체계로 전투력을 배치하면 비용이 5~10배 저렴해진다고 강조했다. 5년 뒤면 지구상 어디에 있든 적에게 위치가 노출되는 시대가 온다는 경고도 했다.
데릭 앤더슨 차관보는 특수작전사령부의 실험 성과를 소개했다. 일선 부대가 과제를 내고, 업계가 30일 안에 제안서를 내고, 발표 당일 계약까지 끝내는 ‘액셀러레이터 데이’로 통상 18~24개월 걸리던 조달을 두 달로 줄였다는 것이다.
그는 특수부대원들을 “박사급 두뇌를 가졌지만 술집 싸움에서도 지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소개해 객석의 웃음을 끌어냈다. 국방자율전쟁단은 특수작전사령부 내 ‘자율전 태스크포스’로 전환돼 새 사령부를 직접 지원한다.
마지막 질문은 사람이었다. 헤그세스 장관은 “여러분의 아들딸이 대우받기를 바라는 대로 부대를 대하라”는 자신의 ‘황금률’을 다시 꺼냈다. 할당제와 기준 완화가 군의 사기를 떨어뜨렸고, 대대로 군에 몸담아 온 가문조차 자녀의 입대를 망설이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다만 이 대목에서 그는 언론과 민주당의 비판을 받아 온 ‘전사 기준’ 발언을 이날도 거친 표현 그대로 되풀이했다.
그는 최고의 미국 청년들을 데려와 놓고 1990년대 장비를 쥐여 줄 수는 없다며, 흔히 윈스턴 처칠의 말로 알려진 격언을 인용했다. “미국은 결국 언제나 올바른 답을 찾아낸다. 다만 시간이 좀 걸릴 뿐이다.”
반대편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상원 군사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잭 리드 의원은 1조5천억 달러 요청, 특히 3,500억 달러를 예산조정 절차로 처리하려는 계획을 비판했다. 상원 민주당은 지난 7월 이란 전쟁과 의회 협의 부재를 문제 삼아 1조1,500억 달러 규모의 국방수권법 절차 표결을 막아 세웠다.
공화당 안에서도 신중론이 있다. 미치 매코널 상원 국방예산소위원장은 지난 6월 또 다른 예산조정법안은 없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인권단체 쪽에서는 ‘킬러 로봇’ 논란을 제기한다. 반면 헤그세스 장관과 지지자들은 사람 대신 기계를 위험 지역에 보내는 것이야말로 장병의 생명을 지키는 길이라고 맞선다.
이 뉴스를 미국 국방부 내부 사정으로만 볼 일이 아니다. 먼저 규모다. 국방부가 요청한 드론·자율전 예산은 세계 국방비 상위 10위권에 들 만한 액수로, 한국과 우크라이나, 이스라엘의 전체 국방예산보다 많다. 미국이 드론 한 분야에만 한국 국방비 전체를 웃도는 돈을 쏟겠다는 뜻이다. 이 거대한 수요가 어디로 흘러가느냐가 한국 방산업계의 다음 10년을 좌우할 수 있다.
기회의 문은 이미 열려 있다. 헤그세스 장관은 우크라이나 드론에 중국산 부품이 대거 들어가 있어 그대로 가져다 쓸 수 없다고 말했다. 중국을 뺀 공급망이 필요하다는 뜻이고, 한국은 그 빈자리를 채울 몇 안 되는 제조 강국이다.
미 방산기업 안두릴은 HD현대와 개발 중인 무인수상정 시제함을 울산 조선소에서 건조하고 있으며, 이르면 10월 진수해 미국 연안에서 시범 운항할 계획이다. 안두릴은 대한항공과는 무인기를, 현대로템과는 유무인복합 지휘통제체계를 함께 개발하고 있다.
카오 장관 대행의 말처럼 무인 함정이 유인 함정보다 훨씬 빨리 지어진다면, 세계 최고 수준의 건조 속도를 가진 한국 조선소의 몸값은 더 오를 수밖에 없다. 한미 조선협력 프로젝트 ‘마스가’와도 맞물리는 대목이다.
한국군도 이미 이 판에 발을 들였다. 미 육군은 지난 1년 사이 영국·루마니아·호주·폴란드와 함께 한국과도 드론 마켓플레이스 관련 협정을 맺었다. 미군이 검증한 드론을 빠르게 들여올 수 있고, 연합작전에서 장비 호환성도 높아진다.
북한의 위협을 생각하면 더 절박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자폭형 드론의 대량생산을 지시했고, 한국항공우주산업은 KF-21 조종사가 무인 편대를 지휘하는 유·무인 협업 체계를 개발하고 있다. 미국의 교리가 바뀌면 주한미군의 싸우는 방식도 바뀐다. 한국군의 유·무인 복합 전력 구축도 속도를 낼 수밖에 없다.
호르무즈 해협 이야기도 한국과 직결된다. 한국은 원유 수입의 70% 안팎을 중동에 기대고 있다. 헤그세스 장관은 이날 제82공수사단이 “말 그대로 호르무즈 해협을 장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5월 기자회견에서 호르무즈 작전과 관련해 한국이 한 걸음 더 나서 주길 기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이 무인 전력으로 해협 경계 비용을 낮출수록, 동맹국에 대한 분담 요구가 어떤 형태로 바뀔지도 지켜봐야 한다.
관건은 의회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예산조정법안의 운명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텔 장관 대행은 패널을 마무리하며 “앞으로 몇 달이 오늘 밝힌 모든 것이 현실이 될지를 판가름할 것”이라고 말했다.